공정하다는 착각 독후감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독서리뷰 (마이클 샌델)

이 책은 명성에 걸맞게 능력주의 신화에 균열을 내고 공동선과 우리에게 필요한 시민적 덕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을 이끌어내려고 심히 노력한다.

 

능력주의는 가난한 사람도, 차별 받는 사람도 자신이 능력에 따라 “사회적 상승”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적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므로 공정한 것이고 정의롭다고 믿어진다.

 

마이클 샌델은 이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능력주의가 과연 공정한가? 나아가 정의로운가? 능력주의 신화에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일단 능력 발휘를 위한 발판, 즉 기회의 평등을 완벽하게 가다듬는 것이 불가능하다.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부는 대물림되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의 능력주의는 세습귀족제로 굳어져가고 있다. 어쩌다 한번씩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공한 사람의 감동스토리는 때로는 능력주의를 강화하고 패자에게는 더 큰 굴욕감을 안긴다.

 

두 번째 문제점은 더 심오하다. 만약에 기회의 평등을 완벽하게 가다듬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실현된다해도 그것이 정말 도덕적으로 충분할까?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정말로 시장이 베푸는 어마어마한 보상을 독식할 자격이 있는걸까? 어떤 재능과 능력의 소유나 결여를 순전히 각자의 몫으로 봐도 되는걸까? 기회의 평등이 가다듬어진다고 해도 똑같이 노력했지만 시장이 좋아하는 재능이 없는 탓에 어떤 사람들은 말도 안되게 작은 보상을 받는 것이 과연 공정할까?

 

이 책은 쉽게 대답하기 힘들고, 도덕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많은 질문을 던지며 능력주의의 배경, 역사, 표면과 이면을 샅샅이 뒤져 파헤친다.

 

이 책의 거의 모든 부분에 동의하며 읽었다. 특히 능력주의가 승자에게는 오만과 불안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준다는 것, 공동선과 시민적 덕성을 파괴한다는 것에 깊이 공감했다. 능력주의는 성공한 사람도 마냥 행복할 수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승자의 오만과 불안은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극심한 인종차별을 받던 행크 애런이 병뚜껑을 막대기로 때리며 연습을 하고 노력을 거듭한 끝에 결국 베이브 루스의 최다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어. 내 성공은 내가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야. 혹은 내 실패는 내 탓이야.’라고 능력주의를 애호하는 사회가 아니라, 오직 홈런을 때려야만 벗어날 수 있는 인종주의의 부정의한 시스템에 치를 떠는 사회가 공동선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은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도록 할 수 있는 ‘조건의 평등’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일을 하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널리 보급되어 함께 즐길 수 있는 학습 문화를 공유하고, 함께 사는 시민들과 공공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우리는 오늘날 조건의 평등을 별로 많이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각자 다른 장소에서 일하고 놀고 살고 쇼핑한다. 아이들은 분리되어 다른 학교에 다닌다.

그가 제안하는 ‘조건의 평등’은 완벽한 평등(결과의 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삶의 영역에 사는 시민들이 서로 공동의 장소에 만날 것을 요구한다. 만나서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토론하고 타협하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다.

 

그는 또한 급여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없애는 대신 금융거래세를 신설하여 실물경제에는 도움이 전혀 안 되는 행위들을 억제하는 방안을 우리의 토론 주제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일의 존엄성에 대해, 어떤 종류의 일이 인정과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우리 삶을 진정으로 지탱하고 있는 실체로써의 일이 무엇인지 토론해보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실체로써의 일, 우리 삶을 직접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마트 계산원, 배달원, 의료업무 종사자, 돌봄 노동자, 공공부문 곳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생산업무 종사자, 청소부, 조리원 등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는 사람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윤택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실체로써의 일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우리들을 벌써 많이 잊은 듯 하다.)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이 합당한 사회적 존경을 받지 못하고, 수준 있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불공정한지 토론해야 한다.

 

마이클 샌델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시장주도적 세계화와 능력주의적 성공관은 시민들 사이의 도덕적 유대관계를 뜯어내 버렸다. 금융, 투기, 자본의 정체성은 우리가 서로에게 덜 의존적인것처럼 느끼게 하였고, 따라서 우리는 서로에게 덜 감사하게 되었으며, 누가 연대하자고 말하면 덜 호응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잃게 되었고, 그런 유대관계의 상실로 빚어진 분노의 회오리 속에 있다. 그는 우리가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연대의 끈을 다시 매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성공할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딱히 성공하지 않아도 수준 높은 삶을 누릴 수 있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각자의 방법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싶다.

 

책 중에서.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 아니면 행운의 산물인가? 나의 노력은 나의 것이지만, 그런 노력은 패배자도 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재능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한 운이다. 나의 노력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를 만난 것도 내가 시대를 잘 만난 행운의 결과인 것이다.”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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