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리프킨] 회복력 시대 요약과 리뷰
제러미 리프킨의 신작, 회복력 시대(THE AGE OF RESILIENCE)를 읽었다.
지구상에서 인류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새로운 시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학, 사회학, 철학, 과학, 정치,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여 복합적으로 논의하고 있어서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책을 열심히 읽은 독자로서 감히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제러미 리프킨 회복력 시대 요약
오늘날 걷잡을 수 없는 기후위기와 전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인류는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이론과 실천의 운영 수단으로 오랫동안 신봉된 효율성이 경제와 사회의 위험을 키우며 그에 따르는 취약성에 대한 책임이 크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집단적 회복력을 약화한다는 사실, 우리는 나약한 존재이고 지구상에 모든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사실을 깨달았다면 질문은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우리는 하나의 ‘종’에 불과하고 지구의 생태계와 서식지의 모든 다른 ‘종’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곧 자연이다. 지구와 자연을 인간이 활용하는 대상이나 자원으로 생각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가 이 지구 시스템 안에 속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인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경제를 구성하고 정부 거버넌스의 개념을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금융 자본은 더 이상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 생태 자본이야말로 지구의 자산이다. 우리는 이제 효율성 시대에서 적응성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의 이행은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성장에서 번영으로,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 판매자-구매자 시장에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로, 선형 프로세스에서 인공두뇌 프로세스로, 수직 통합형 규모의 경제에서 수평 통합형 규모의 경제로, 중앙 집중형 가치사슬에서 분산형 가치사슬로, 거대 복합기업에서 유동적인 공유로 블록체인을 형성하고 민첩한 첨단기술 중소기업으로, 지식재산권에서 오픈소스 지식 공유로, 제로섬게임에서 네트워크 효과로, 세계화에서 세방화로, 소비자주권주의에서 환경책임주의로, 국내총생산에서 삶의질지수로, 부정적인 외부 효과에서 순환성으로, 지정학에서 생명권 정치학으로의 전환을 포함한 경제 및 사회의 전면적 변화와 함께 일어난다. 이것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세계 경제 모델이자 바로 ‘회복력 시대’이다.
우리는 이미 회복력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간 종은 자연계를 약탈하고 망치는 종이면서 치유자도 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단지 ‘시간’이 문제다. 우리가 제시간에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다. 회복력시대의 시스템을 얼마나 어떻게 잘 갖추는지가 중요하다.
제러미 리프킨은 위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배경과 근거를 여러 학문의 측면에서 연구하고 분석했다. 그 내용 중 내가 중요하고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적으면 다음과 같다.
효율성과 회복력의 상충 관계
우리는 1,2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테일러주의에 입각한 효율성을 신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이를 ‘진보의 시대’라고 부른다. 효율성과 회복력은 상충 관계가 있다. 자본주의 자체의 근본적인 모순이다. 효율성이 높아지면 회복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효율성의 핵심은 마찰, 즉 경제활동의 속도와 최적화를 늦출 수 있는 중복과 반복을 제거하는 데 있다. 하지만 회복력의 핵심은 적어도 본질적으로는 중복성과 다양성이다. 예를 들면, 어떤 작물 품종의 단일재배가 성장 속도 면에서는 훨씬 효율적이겠지만, 병충해를 입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심지어 이 효율성 내러티브는 공정, 성 평등, 인종 평등, 참정권 박탈, 도덕, 심지어 자연계에 대한 인류의 책임 등을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데 편리한 도구가 되었다.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했나?
효율성 대 엔트로피
제러미 리프킨은 GDP는 경제활동의 순간적 교환가치만을 측정하는 것으로, 이러한 지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에 대해 열역학법칙을 들어 설명한다. 판매 시점의 제품 및 서비스 가치는 가치사슬 각 단계에 수반되는 지구의 에너지 매장량과 여타 천연자원의 고갈 그리고 엔트로피 폐기물이라는 측면에서의 비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비용편익을 분석할 때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편협하게 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서로 연결되는 부정적 외부 효과의 폭풍을 우리는 눈 감고 무시하고 있다. 리프킨은 경제학자들의 순진함이 인상적이라고 개탄스럽게 말한다.
지구의 자산화와 노동력의 빈곤화
제러미 리프킨은 인류가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하면서 지구의 거대한 권역은 물론이고 화학과 물리학, 생물학을 구성하는 지구의 여타 작용까지 인클로저의 대상으로 삼고 부분적으로 사유화하고 이용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인클로저는 근세 초 유럽에서 영주나 지주가 목축업이나 농업을 대규모로 하기 위해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고 소유권을 주장하기까지 하면서 사유지를 확장한 현상이다.)
저자는 이어 시계와 미술의 원근법, 글을 통한 소통, 석탄 채굴과 증기 배출, 시간의 표준화 등을 ‘인류가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하며 지구의 작용들을 인클로저의 대상으로 삼고 사유화했다’고 통찰한다. 이렇게 새로운 유형의 의사소통과 에너지원, 새로운 물류 방식과 이동방식 등이 결합하여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고 경제활동, 사회생활, 거버넌스를 움직이며 효율성을 사회의 지배적인 주제 자리에 올려놓았다.
복합 적응형 사회 생태 시스템의 가르침
인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자연계와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우리가 다시 수렵 채집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지구를 완전히 다시 원상태로 회복시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과 사회, 우주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주체는 결코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상호작용 자체가 아무리 미미해도 역학을 바꾸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의 일부로서 어떻게 적응하고 회복하며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저자는 경제 이론의 개조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일반균형이론과 비용편익분석, 좁은 의미에서의 외부 효과의 정의, 생산성과 GDP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개념 등을 포함해 오랫동안 학계에서 정설로 신봉된 것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복합 적응형 사회 생태 시스템(CASES)은 기존의 전통적인 과학 탐구의 덫에서 여타 학문 분야를 구해낼 수 있다. (CASES: Complex Adaptive Social/Ecological System Modeling) CASES 접근방식은 부분의 특성이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속성에 관심을 가지고, 대상보다는 관계에, 폐쇄적 시스템보다는 개방적 시스템에 초점을 두고 상황과 패턴, 환경, 상태에 맞춰 스스로를 변모시키는 과정, 즉 적응하는 법을 연구하고 학습한다.
미국의 회복력 3.0 인프라 혁신 보고서
저자가 작업한 미국의 3.0 인프라 혁신 보고서가 소개되었다. 이 보고서는 20년의 실행기간(2020년~2040년)에 걸친 회복력 인프라의 개념화와 단계별 전개의 거의 모든 기술적, 상업적 측면을 철저히 파고든다. 이 연구계획은 제조와 조달, 조합, 건설, 인프라 구축 및 통합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기술적, 비용적 측면에 대한 예측, 그리고 직무와 전문 인력 배치에 대해서도 논한다.
보고서 내용은 예를 들면, 스마트 디지털 무공해 인프라 확대, 관련 신규 일자리 창출, 지하 케이블 및 터미널 설치, 재생 가능한 전기의 생산과 공유, 광섬유 기반 광대역 설치, 전기자동차 인프라 구축, 태양광 발전 시스템 구축, 주거용 건물 개조, 비즈니스 모델 전환, 해외로 나간 제조 공장을 다시 지역에 불러들이고 물류 시스템과 공급망의 회복력 구축, 건물의 단열, 난방방식 개선으로 기후 관련 파괴에 회복력 있는 구조 유지,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수자원 관리와 기후변화 영향 추적 관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다시 원시시대처럼 수렵 채집 하면서 살자는 허무맹랑하고 불가능한 비현실적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지금 가지고 있는 기술을 이용하고 일자리도 창출하면서 회복력과 적응력을 키우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 법을 만드는 사람,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 모든 유권자들이 참고할만한 구체적이고 꽤나 실무적인 내용까지 제시하고 있다.
(미국 3.0 회복력 사회: 스마트 3차 산업혁명 인프라와 미국 경제의 회복(America 3.0 The Resilient Society: a Smart Third Industrial Revolution Infrastructure and the Recovery of the American Economy)
가야할 길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고, 인간의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다. 지구의 요소들은 우리 몸에 원자와 분자의 형태로 들어와 순환하다가 우리의 DNA가 정하는 대로 우리와 함께 살다가 다른 곳으로 또 떠난다. 우리는 이 사실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지구로부터 위협을 느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구 시스템 안에 속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공감 능력(생명애)과 자신을 다른 생명체와 동일시하는 본능이 있다. 이 본능은 아이들에게 강하게 나타나는데 자연을 자원으로 보는 학교 교육이 시작되면 자연을 대상화하기 시작하며 그 본성을 잃는다. 우리는 경제 시스템과 거버넌스, 교육 시스템을 새롭게 구상해야 한다. 우리가 생명 공동체에 다시 합류하고 복합 적응형 사회 생태 시스템에 기반한 사고의 기술을 활용해 우리 고향인 지구 행성에 적응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회복력의 존재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인류가 그동안 돈과 탐욕에 미쳐 날뛰며 지구와 이길 수 없는 씨름을 했다. 제 집 부수기인 셈이다. 저자가 인류의 역사, 사회, 문화 등 여러 측면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비판적인 태도로 살펴보면서도 아직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고 상황을 바꿀만한 역량이 있다고 꽤나 낙관적으로 내다보는 것이 인상 깊었다. 새로운 시대의 방향을 제시하는 대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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