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트렌드 파악하기: 2023 트렌드노트 책 리뷰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에서 낸 "2023 트렌드노트"를 읽었다.
매년 트렌드와 관련된 책이 꽤 많이 나오고 있지만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읽어봤다.
비슷한 스타일의 베스트셀러인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내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관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왠지 손이 안갔고, 또 매년 트렌드를 쫓는다는 것이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2023 트렌드노트를 읽으면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매년 최신의 트렌드를 알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트렌드를 쫓는다, 뒤처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유행에 과하게 민감하다'는 부정적인 느낌의 행위가 아니라, 변해가는 세상과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내 삶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할 기회를 얻기 위한 긍정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대화, 브랜드, 상황에 대한 키워드들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인 빅데이터 연구원들이 데이터를 관측하고, 그 안에서 찾아낸 새로운 인사이트를 <트렌드 노트>라는 책으로 내놓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2023년 트렌드는 아주 다양했는데, 그 중 몇가지를 적어보면 이렇다.
- 실내에서 자연을 즐기다
- 반려 시장이 커진다: 동물 뿐만 아니라 기기도 애착과 반려의 대상이 된다
- 독립된 경제주체의 새로운 경제관념: MZ세대는 이제 그만. 온전한 독립체로서 1인의 삶을 들여다보자
- 이 시대의 가치: 효율, 성취, 간편, 건강, 자아, 독립
- 새로운 관계 맺기의 원형, 팬덤
- 아카이빙, '나'의 역사를 풀어내는 새로운 방법
- 동경의 소비: 특급 호텔 망고빙수
- 구독경제: 구독, 자신만의 유니버스를 소유하는 방식
관심가는 내용을 조금 적어본다.
혼자, 오래 살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선택지
<트렌드 노트>는 미래의 핵심은 '혼자 산다'와 '오래 산다'로 요약된다고 말한다. 1인가구나 고령화와 꼭 같은 말은 아니다. 옛날에도 오래 사는 사람과 혼자 사는 사람은 있었지만, 요즘 달라진 점은 이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선택지가 달라진다. 앞으로도 계속 혼자 오래 살거라고 예상한다면 더 큰 사이즈의 침대와 로봇청소기를 결혼 후로 미루지 않고 지금 구입할 것이다.
또, "오래 살 거라고 예상하기에 건강이 중요하고, 혼자 살 것이기에 간편함이 중요하다. 둘 중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둘이 같이 가는 것이고, 따라서 건강하면서도 간편해야 한다. 한 알의 영양제처럼." - 책 내용 중에서.
동경의 소비: 특급 호텔 망고빙수
동경의 소비는 8만 3천원짜리 호텔 망고 빙수가 단적인 예다. 동경의 소비는 급이 높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 소비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 가격이 얼마인지를 모두가 알고 있다.
<트렌드 노트>는 이러한 소비가 누림의 대중화를 보여주는 예라고 말한다. 예로 호캉스, 비싼 디저트, 파인 다이닝 등 레저와 식음 분야에서 많이 나타난다. 누림의 대중화는 특히 식문화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한 장의 사진으로 드러낼 수 있고 최고급의 문턱이 비교적 낮기 때문이다.
누림의 대중화는 소비 빈도를 높여서 브랜드의 경험자 수를 늘리기 위한 기업과 브랜드의 전략이다. 미끼상품 같은 역할도 한다. 명품 브랜드에서 나오는 립스틱이나 휴대폰 악세서리, 최근에 문을 연 디올 카페, 구찌 레스토랑, 루이비통 레스토랑 등은 브랜드 소비 빈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망고빙수의 가격만 생각하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호텔에 줄을 서서 망고빙수를 소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책에서 말하는 "경험을 중시하는 가치관 때문"이다.
"가격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단, 그 가격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 안에 든 망고 개수가 아니라 그것을 먹으며 얻는 경험에서 온다. 이 경험에 참여했다는 것이 중요하기에 기꺼이 줄을 선다." - 책 내용 중에서.
또 다른 이유로 "과시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과시적 소비란 재력을 과시하고 명예를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소비를 뜻하는 말로,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주창한 개념이다. 오늘날에 과시를 위한 소비는 재력을 과시하기 위함도 있지만 본인의 트렌디함을 나타내기 위함도 있다.
(물론 과시 목적보다는 여러가지 경험에 대한 기록을 자신의 아카이브로 형성하여 그것으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을 가진 사람도 많다)
경험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고급 식문화나 특급 호텔의 망고빙수와 애프터눈 티세트, 스몰 럭셔리 소비 패턴이 대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솔직히 오늘 먹은 망고빙수를 SNS나 그 어떤 곳에도 자랑할 수 없다면 8만 3천원을 망고빙수를 사는데 쓸 사람 숫자는 현저하게 줄어들지 않을까?
정말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실은 약간 버거운 고급식문화를 누리는 걸까? 아니면 경험을 중시하고 특급호텔에서 망고빙수를 소비하는 트렌디한 자신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에 고급식문화를 누리는 걸까? 어느 한 쪽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 행위 안에 여러가지 마음이 녹아 있으니까.
과시욕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닌데 정말 해탈한 사람이 아니라면 과시욕이 아예 없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소비에서 많은 부분이 과시적이라면 그로 인한 피해가 있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 피해는 나 자신이 입는 피해와 내가 남에게 입히는 피해다. 과시 목적으로 이루어진 무리한 소비가 SNS를 타고 보편적 소비로 포장된다. SNS 소통은 좋은 점도 많지만 피해도 많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할때 나만 못하면 낙오될 것 같은 불안함과 공포심을 심어준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SNS에 자랑할 수 없고, 남들이 전혀 모른다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각자 찾아보면 좋겠다. 과시할 때도 물론 행복하지만 지나친 과시욕으로 인한 소비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다.
카르페디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지나친 과시욕에 빠지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기 어려울 수 있다. 눈앞의 망고빙수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이것을 어떻게 예쁘게 찍어서 올릴까에 몰두하게 된다.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 가사가 생각난다. "부러움이란 거를 모르는 놈도 있거든".
물론 나는 과시도 좀 하고 싶고 부러움이란 거를 아는 놈이지만, 그래도 '부러움 - 비교 - 불안과 공포'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어느정도 경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과시적 소비와 대응되는 개념으로 "과시적 비소비" 트렌드도 있다. 이건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살펴볼만 하다(과시적 소비에 대한 내용도 이 책에 나온 것은 아니다).
과시적 비소비란 소비가 아닌 비소비를 과시하는 것을 뜻한다. 본인의 선택이나 취향을 과시할 목적으로 비소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참 신선하고 창의적인 접근인 것 같다. 과시적 소비나 과시적 비소비나 둘 모두 "과시적"이라는 점에서 과하게 빠지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구독경제: 구독, 자신만의 유니버스를 소유하는 방식
"구독 경제는 이른바 소유의 끝, 경험의 시대를 상징한다고 표현된다. 물질이 풍요로워지면서 물질을 소유하는 것으로는 나를 드러내기가 어려워졌지만, 취향을 기반으로 한 소유는 무형일지라도 나를 표현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이처럼 권한을 소유하고, 그것을 통해 나의 취향 유니버스를 채워가는 데 구독의 역할이 있다." - 책 내용 중에서.
구독과 구독경제가 트렌드가 된 것은 확실히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런 트렌드는 마케터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많은 주제인 것 같아서,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구독경제에 대해 책 한권을 할애해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구독의 종류를 이렇게 나눈다.
- 물질의 소유(1): 생필품(물, 식재료, 소모품)의 정기배송 (편리함, 자동화, 경제적 혜택)
- 물질의 소유(2): 취향 관련(꽃, 와인, 차) 정기구독 (전문가의 안목과 취향을 구매함)
- 권한의 소유: 디지털 컨텐츠 서비스(넷플릭스, 왓챠, 유튜브 뮤직, 스포티파이) 구독 (정체성 표현, 취향의 유니버스 형성)
2023 트렌드노트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트렌드 분석을 통해 독자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마케팅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케팅이 주업이 아니라도 부캐, 블로그, 유튜브 등 환금성이 있는 개인 아카이브를 구축중인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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