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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을의 철학 / 송수진]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우리들

by iinnffoo 2021. 4. 20.

[을의 철학 / 송수진] 독서 리뷰

을의 철학 송수진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송수진 님의 <을의 철학>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노동현장과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예시로 삼아 "일상 속 철학"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저자 소개는 "30대 중반.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글귀로 시작됩니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서른 즈음에는 금융사기로 모은 돈을 다 날렸다고 합니다. 이후 틈틈이 알바를 하며 공부를 하다 도서관에서 피로한 일상을 타파하고 진정한 "나의 철학"을 찾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로 철학 책을 읽게 되면서 말이지요. 그 책들은 "을"로 살아온 저자의 상황을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저자는 그때부터 니체, 마르크스, 에리히 프롬, 프로이트 등 철학가들의 책을 탐독하며, 자신이 그동안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아팠던 건 철학이 없어서였다. 세상이 정한 방향이나 부모의 기대 말고 스스로 부여한 철학 말이다. 20대 전반을 지배했던 건 나에 대한 철학의 부재였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책을 읽으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을이 직면하게 되는 부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철학 탐구 끝에 저자는 사회복지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현재는 사회복지사 및 청소년 상담사로 일을 하며 철학과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고 해요.

 

이 책은 보통의 평범한 월급쟁이가 쉽게 공감할만한 노동의 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저도 어렵지 않게 책에 공감할 수 있었는데요. 책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부분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길들여졌다

우리는 가정, 학교, 사회에서 자유경쟁시장과 자본에 대해 자연스럽게 학습합니다. 처음부터 주류가 원하는 방식으로 학습합니다. 무한경쟁시대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취학 전부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병기로 길러지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나 돈, 또는 경쟁의 깊은 의미를 생각해보거나 이 개념들을 나 자신에게 대입해서 생각해 볼 시간도 기회도 없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많이 부여받지 못한 채로 자란 우리는 회사에 가면 또 길들여집니다. 조직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좋은 것이라고 세뇌당하고,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우리들끼리 경쟁을 하며 스스로를 길들이기도 하지요. 이런 문화와 조직이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직이나 퇴사를 결심하면 "여기서 이 정도도 못 버티면 넌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어." 라는 말을 듣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지금 있는 곳에서는 5분도 견딜 수 없지만 다른 곳에 가면 50년도 살아 낼 수 있다. 여기서 못 버틴다는 것은 여기서는 내 리듬, 내 생리가 어긋났단 뜻이다. 어서 탈출하고 쉬어야 한다. 계속 미련하게 버티다가 죽거나 다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기억하자. 최소한 내 리듬으로 일단은 살자고." - 본문 중에서

 

진짜 적은 누구인가

진짜 적은 따로 있는데 "을"들은 정작 서로를 견제하고 다툼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정말 견제해야 할 것은 따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경쟁하게 만들었는가, 누가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방해하고 서로 싸우도록 만들었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를 우리 모두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스스로 생각해볼 능력이 있지만 대다수는 현실을 살아내기에 바빠서 도저히 그런 시간이 안 납니다.

 

"철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대다수 피지배계급에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뎌내기 위한 환상들이 존재한다고. 그 환상들을 만든 게 바로 지배계급이다." - 본문 중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우리들

오찬호 님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촛불시위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20대들이 어째서 용산 참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공감하지 못할까"

우리는 자신의 "을"의 삶에 분노하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를 "을" 로 삼고 맙니다. 급기야는 다른 사람에게 이런 냉소를 보냅니다. "그러게 평소에 노력 좀 하지", "니가 열심히 좀 했으면 지금 이런 일 안 하잖아." 너무 완벽히 길들여진 나머지 또 다른 을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립니다.

 

"이런 냉소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달리기 출발선에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당신보다 100미터 앞에서 출발한다. 시작과 함께 당신은 죽기 살기로 뛰었지만 결국 앞에 선 이를 따라잡기 못한다. 앞에 선 이가 우승 트로피를 쥔 채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러게 평소에 노력 좀 하지.' 그러면 당신은 무슨 말을 할 건가." - 본문 중에서

 

 

3 수험생

저자는 고3 수험생을 다룬 한 다큐멘터리 내용을 소개합니다. 대학 입학 수시, 정시에 다 떨어져서 낙담한 그 학생에게 제작진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간절히 대학을 가려고 해요?"

"그러게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에요. 한번 생각해봐야겠네요."

 

"그는 자신을 잊고 있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야 그는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때 그는 거기서 얼마나 놀라운 것을 발견하는가!" - 프리드리히 니체

 

 

 

저자는 스스로 개시한 공부를 하라고 말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부가 아닌 내가 개시한 나만의 공부. 그 공부가 바로 내 존재를 지탱하게 해 주며 스스로에게 자유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사회와 경제에 세뇌되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요즘 우리들 대부분은 어느 정도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가해자로도 살고 있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조명해 주었습니다.

 

"내가 개시한 나만의 공부는 내 존재를 지탱하게 해 준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자유였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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