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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물고기야, 너도 이제 힘에 부치지?

by iinnffoo 2021. 2. 10.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리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수작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습니다. 어릴 적에도 이 책을 읽었지만 역시 고전문학은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줍니다.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

노인은 조각배를 타고 혼자 낚시하는 사람이었고,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84일이 되었습니다. 노인과 함께 낚시를 하러 다니고 그를 매우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르는 한 소년은 부모님의 지시에 따라 다른 배를 타게 되지요. 노인은 84일 동안이나 낚시에 실패했지만 85일째에도 또 다시 바다로 나갑니다.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를 만나게 됩니다.

 

물고기와의 치열한 싸움

노인은 이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서 며칠 밤낮을 싸웁니다. 낚은 작은 물고기를 먹어가며 버티고, 물고기를 끌었다가 끌려갔다가를 반복하며 떠나온 항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먼바다로 나가게 됩니다. 노인은 물고기를 잡을 타이밍을 노리며 자신과의 싸움을 치릅니다. 이 사투를 벌이며 노인은 어느 순간 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물고기의 모습을 동경하고 자신의 모습을 물고기에 투사해서 바라본 듯합니다. 물고기와 싸우고 있지만 단순히 싸워서 이겨야 할 존재로만 보지 않고 그를 형제라 불렀고, 목숨을 바치고 싸우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듯이 물고기를 바라봅니다. 노인은 물고기를 존중하고, 바라보고, 협상하고,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이어 그는 자신의 갈고리에 걸린 큰 물고기를 불쌍하게 여겼다. 멋지면서도 이상한 놈이야. 대체 몇 살이나 먹었을까. 이렇게 힘센 고기는 본 적이 없고 또 이처럼 이상하게 행동하는 놈도 난생 처음이야. (...) 저놈은 남자답게 미끼를 먹었고 남자답게 배를 끌고 있고 전혀 겁먹은 태가 없이 싸움을 걸고 있어.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걸까?"
"물고기야, 너도 이제 힘에 부치지? 그가 말했다. 그래. 그건 나도 그래."

 

 

 

 

노인은 결국 물고기에게 작살을 꽂아 넣어 잡는 데 성공했지만 물고기의 크기 때문에 배에 실을 수는 없었습니다. 노인은 배의 옆구리에 물고기를 단단히 고정하고 항구를 향해 달렸어요. 그런데 물고기의 피 냄새를 맡고 달라드는 상어들과 또다시 고된 싸움을 펼치게 됩니다.

 

"나의 형제여. 난 너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상한 존재를 본 적이 없다. 물고기가 살아 있을 때 녀석을 사랑했고 또 죽은 뒤에도 사랑했어."

 

노인은 결국 상어들에게 물고기의 살 대부분을 빼앗기고, 항구로 돌아왔을 때는 물고기의 잔해만을 뭍으로 올릴 수 있게 됩니다. 노인은 상어와 싸우면서도 자신의 싸움에 집중합니다. 어부는 어부의 싸움을, 상어는 상어의 싸움을, 물고기는 물고기의 싸움을 치렀습니다. 제 생각에 이 책의 묘미는 단순한 스토리 안에서 삶과 죽음, 굳건한 의지, 휴식, 온갖 고난을 모두 담아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 자신의 고민과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는" 인간의 굳건한 의지도 담고 있습니다.

 

모든 비유적 의미를 제쳐두고

노인과 바다는 종교적 의미나 삶의 의미를 비유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으로 많이 해석되곤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런 모든 비유적 의미를 제쳐두고 작품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읽어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노인이 물고기와 싸우는 과정이 자세하고 선명하게 그려져 책을 읽는 동안 절로 손에 땀을 쥐고 이입하게 되었어요. 소설을 읽고 나서는 마치 제가 물고기와 한바탕 싸우고 온 것처럼 피로를 느낄 정도였습니다. 종교나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읽지 않더라도 바다 한가운데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이 이야기를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비유적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이 작품에 담긴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 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노인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낚시에 계속 실패 하더라도 계속 다시 묵묵히 바다로 나가는 장면을 보며, 바다가 "인간의 삶"을 나타낸다고 느꼈습니다. 노인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언제나 묵묵히 바다로 뛰어들어 또 오늘의 낚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처럼 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어쩌다 보면 큰일에 휩싸이게 되고, 그 일에서 고군분투 하다보면 뭔가를 얻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노인은 자신의 삶에 당당히 뛰어들어서 싸웠습니다. 잔해만 남은 물고기를 가지고 돌아왔지만 그 모든 과정마저 부정당할 수는 없습니다.

 

노인은 망망대해에서 혼자 싸웁니다. 이 모습이 마치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결국은 혼자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결국 각자 혼자 치르는 자신만의 싸움. 그래도 노인에게는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돌봐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소년이 있습니다. 노인은 자신만의 싸움을 치르고 자신의 휴식처인 소년이 있는 마을로 돌아옵니다. 이 부분도 우리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결국 각자의 삶은 혼자만의 싸움이지만 각자의 휴식처와 사랑의 대상에게 돌아가 마음을 공유하고 휴식을 취하지요. 우리는 그렇게 의연하게 휴식을 취하고는 다음날에는 다시 그 날의 낚시를 위해 어김없이 바다로 나갑니다.

 

노인이 며칠 밤낮을 싸우면서 잡은 물고기는 결국 항구로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집까지 가지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내면의 결실과 그 자신만이 알고 있는 싸움의 과정이었습니다. 그 내면의 결실이라는 것이 바로 삶 자체를 뜻하는 것 아닐까요? 이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일의 결과만으로는 결코 그 일에 대해서 잘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오로지 그 일의 주인공인 당신만이 알 수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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