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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독서노트

by iinnffoo 2020. 12. 24.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독서노트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이 책은 제가 이제까지 읽은 모든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책 Best 5 안에 드는 책입니다. 이 책은 매춘부의 아이로 태어나 로자 아줌마라는 양육자의 손에 자라는 모모라는 아이가 겪고 바라보는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절제된 듯 하지만 가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문체와 많은 사회 문제를 조명하는 내용이 아름답게 어우러집니다.

 

이 책은 내용도 좋지만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로맹 가리는 이미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였습니다. 그런 그가 정체를 밝히지 않고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이 자기 앞의 생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공쿠르 상은 같은 작가가 두 번 이상 수상할 수 없는데,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에밀 아자르는 공쿠르 상을 두 번 받는 유일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로맹 가리는 후에 스스로 목숨을 거두며 유서를 남겼는데, 그 유서에 자신이 바로 에밀 아자르였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라는 참으로 작가다운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아직 책을 안 보신 분이시라면 독서의 즐거움을 위해 아래 내용은 안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모모의 어른스러움과 아이다움

모모는 자신이 충분히 어려본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14살 소년이 하는 말 치고 서글픕니다. 모모는 자신이 10살인 줄 알고 있었다가 어느 계기로 자신이 사실은 14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모모를 돌보는 로자 아줌마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면서 아이지만 어른스러운 모모에게 마음을 상당 부분 의지하게 되었고, 이 모모가 자라서 곁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로자 아줌마에게 15살이라는 나이의 의미는 이제 세상으로 나가서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지내야 하는 나이였습니다. 모모를 잃기 싫어서 나이까지 속인 로자 아줌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모모는 자신이 어려본 적이 없었다고 하지만 책의 곳곳에서 아이다움을 발산하며 귀여움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일으킵니다. 로자 아줌마가 죽고 나면 어쩌면 나를 받아줄지도 모르는 나딘 부부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모모는 이렇게 적습니다.

내가 여전히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데 그들이 너무 재미있어했기 때문에 나는 이야기를 끝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나와 함께 있으면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버림받는 것에 익숙한 듯 행동하고, 상관없다는 듯 말하지만 자신을 돌봐주고 사랑해 줄 어른의 따뜻한 품을 갈구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결핍을 가진 자들의 연대

이 책에는 종교, 계급, 휴머니즘, 각종 결핍, 롤라 아줌마, 카디르씨 등을 통해 결핍을 가진 자들의 연대의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롤라 아줌마는 한 아파트에 사는 모모네가 힘들 때 와서 도와주고 경제적인 도움도 줍니다. 이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된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 건물의 구성원들은 모두 각자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때로는 더 어려운 위층으로 올라가서 다른 사람을 돌봅니다.

별안간 나타난 모모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랍인이니, 유태인이니 하면서 난리를 치지만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 속 아파트 구성원들은 종교니, 성적 지향이니 하는 것들을 따지지 않고 연대합니다.

저는 아랍인 아들을 원합니다! 유태인 아들은 필요 없어요! 그는 소릴 질렀다. ”그게 결국 같은 거라니까요.“

 

이 책에는 매춘부를 아이의 양육자로 인정하지 않는 법률이나 금지된 낙태나 안락사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띄웁니다.

나는 콜레라에 대해 잘은 몰라도 롤라 아줌마의 말처럼 그렇게 구역질 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건 그저 병일뿐이고 병에는 책임이 없으니까. 나는 때로 콜레라를 변호하고 싶었다. 적어도 콜레라가 그렇게 무서운 병이 된 것은 콜레라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콜레라가 되겠다고 결심해서 콜레라가 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콜레라가 된 것이니까.”

모모가 한 말에 콜레라를 다른 어떤 선천적인 것으로 바꾸어 읽어 보면 가슴이 저립니다. 모모의 경우에 매춘부의 아이라는 단어가 될 것입니다. 매춘부의 아이가 되겠다고 결심해서 매춘부의 아이가 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매춘부의 아이가 된 것이니까.

 

 

이 책의 수많은 아름다운 문장 중에 하나를 꼽으며 독서노트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무척 차분해 보였다. 다만 오줌을 쌌으니 닦아달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2020.12.24. 류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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