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책 리뷰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여야 합니까?”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습니다. 줄거리만 보면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를 운명으로 여기며 사랑하고 추억을 쌓고 싸우다가 한쪽이 마음이 변해서 헤어지고 버림받은 사람은 너무나 괴로워하다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뻔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알랭 드 보통은 무겁고도 가볍게 해석하며 각종 철학과 사유를 가미합니다.
운명
책의 남성 화자는 여자 주인공 클로이를 비행기에서 만나고 사랑에 빠집니다. 화자는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비행기에서 클로이와 이렇게 만나게 될 확률을 가슴이 답답할 만큼 집요하게 계산하며 이것은 운명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운명이란 그냥 각자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요? 이건 무조건 운명이야!라고 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남성 화자의 생각을 읽으면서 알랭 드 보통이 좀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초콜릿
사랑에 빠진 남녀는 서로를 알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의 이면에는 “나는 누구여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
클로이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상대방이 초콜릿을 같이 좋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좋아하지도 않는 초콜릿을(심지어 약간의 알러지가 있는데도) 디저트로 선택해서 먹으며, “나는 초콜릿이라면 도무지 참지를 못하거든요. 저 아래 있는 더블 초콜릿 케이크 있죠? 저걸 주문해야겠어요. 다른 것보다 초콜릿이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으니까.” 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보며 상대방의 마음에 들기 위한 화자의 처절한 행동에 웃음이 날 지경이었지만, 저는 이런 부분이야말로(초콜릿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에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편안한 연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노력한다는 예쁜 핑계 아래 자신의 취향과 느낌에 솔직하지 못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언제까지 계속 의식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상대방에게는 나중에 언젠가는 이런 말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안 변한다며! 자기 마음이 변했어? 날 사랑하긴 하는 거야?” 사소한 치장과 거짓말로 사랑을 쌓아오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처음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어렵지요.
이별로 인한 자살기도
화자는 클로이와 헤어지고 나서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자살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화자가 자살하고 나서 죄책감에 괴로워할 클로이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깨닫고 자살을 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별로 인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하던 화자는 어느 날 디너파티에서 레이철이라는 여자를 만나고 사랑에 푹 빠져들고 맙니다.
이 책에서 화자와 주변 인물들의 나이를 젊게 설정한 이유가 보이는 듯합니다. 사랑을 시작할 때, 이제 막 경험하기 시작할 때 혼자 속으로 생각해볼 법한 사유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화자는 클로이와는 이런 사랑을 했지만 다음에는 어떤 사랑을 할까요? 클로이와의 연애 경험이 다음 연애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요?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게 하는 이유입니다.
이 책의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나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소설이지만 작가가 개입하는 정도가 에세이 수준입니다.
일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집요할 정도로(제가 참여했던 독서모임에 어떤 분이 진절머리 날 정도다. 질린다. 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사유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나는 좀 더 복잡한 교훈을 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의 모순들에 부응할 수 있는 교훈, 지혜에 대한 요구를 지혜가 무력해지는 상황과 조화시킬 수 있고, 첫눈에 반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그 불가피성과 조화시킬 수 있는 교훈. 사랑을 평가할 때에는 교조적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로 달아나지 말아야 하고, 두려움의 철학이나 실망의 윤리학을 구축하지 말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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