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 문해력 논란. 정말 문해력 문제일까?
문해력 논란의 몇 가지 예시
1. 심심한 사과
매우 깊게 사과드린다는 의미의 ‘심심한 사과’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일부 네티즌이 사과 태도에 대해 비난을 한 사례
2. 금일을 금요일로 알아듣는 경우
3. 사흘을 4일로 알아듣는 경우
4. 고지식하다
성질이 외곬으로 곧아 융통성이 없다는 뜻의 ‘고지식하다’를 지식수준이 높다고 이해한 사례
5. 이지적이다
본능이나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지식과 윤리에 따라 사리를 분별하고 깨닫는다는 뜻의 ‘이지적’을 쉬워 보인다는 뜻으로(easy) 이해한 사례
6. 연중무휴
연중무휴가 쉬는 날이 없다는 뜻임을 모르는 경우
7. 무운을 빈다
전쟁에 나가서 행운을 빈다 또는 이겨서 돌아오라는 뜻의 ‘무운을 빌다’를 운이 없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이해한 사례
정말 문해력이 문제일까?
위와 같은 예시들을 들며 요즘 MZ세대 또는 학생들의 문해력 부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걱정과 비난이 쏟아진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하고, 사흘이 4일인 줄 알고, 연중무휴를 몰랐다는 말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은 ‘음 심각하군!’ 이었다.
그런데 ‘무운을 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 이런 말은 잘 안 쓰지 않나? 모를 수도 있지 않나?’
내 마음속에서 ‘심각하군’과 ‘모를 수도 있지 않나?’의 차이점은 바로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였다. 이 생각이 들었을 때 조금 소름이 돋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 세상 문해력 부족의 기준을 ‘나’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당연히 아는 말을 누가 모른다고 하면 ‘그것도 몰라?’, 내가 모르는 말이면 ‘좀 쉽게 말해야지, 왜 어렵게 말해?’ (대충 좋은 말일 거라는 느낌은 오지만 나는 무운을 빈다는 말의 뜻을 몰랐다.)
그런데 이 세상 문해력 부족의 기준이 나 자신이 될 수가 있나? 그럴 리가 없다.
그리고 따지자면 ‘무운을 빈다’라는 말을 모른다는 사실이 ‘문해력’ 부족을 뜻하는 걸까? 그냥 그 단어를 모르는 것이니 ‘어휘력’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듯하다.
나는 글을 읽고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이 심히 부족하지는 않지만 ‘무운’이라는 어휘를 몰랐던 것이다. 물론 어휘력이 많이 부족하면 당연히 문해력도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휘력과 문해력은 다른 말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문해력도 어휘력도 아닌 ‘소통 의지 부족’이 아닐까 싶다.
말이든 글이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소통’이다. 문해력이나 어휘력 테스트도 아니고, 잘난 척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서로 말을 알아듣고자 하는 것이다.
‘심심한 사과’ 의 경우, 사과를 올리는 처지에서 누구나 쉽게 어린아이도 사과의 뜻을 알아듣게 하고 싶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하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말이라고 느껴져서, 또는 한자를 사용한 표현이 뭔가 더 정중해 보여서 그렇게 적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심심’이라는 한자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글을 썼던 사람은 ‘뭐야 왜 말을 못 알아들어? 요즘 젊은 애들 문해력 왜 이래?’ 보다는 ‘아, 이 어휘는 요즘 많이 사용을 안 하나? 그러면 더 쉽게 많은 사람에게 사과를 전하려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이 소통을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글을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는 글을 봤을 때, ‘심심’이라는 한자어를 모를 수는 있다. 하지만 문맥과 정황상 정말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심심해서 사과할 리는 없다. 이때 글을 읽고 처음에 떠오른 느낌대로 반사적으로 글쓴이를 공격하기보다 ‘사과의 글인데 심심하다는 말은 무슨 말이지? 저 단어 뜻을 내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하면서 그 뜻을 찾아보는 것이 소통을 위한 노력이다.
언어는 원래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바뀌고, 사용빈도가 점점 떨어져서 일부 사람들만 사용하는 말들은 옛날 책에서만 나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주로 사용하는 말이나 단어는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세대별로 차이가 있기도 하다.
나는 ‘무운’이라는 말을 몰랐지만,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 뜻을 알든 모르든 말과 글이라는 것이 서로 소통을 하기 위한 것이니, 모르면 찾아보면 되고, 이해가 잘 안 되면 다시 물어보면 된다.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말을 기성세대가 잘 모르듯, ‘하루’, ‘이틀’에 비해 사용빈도가 매우 떨어지는 ‘사흘’이라는 어휘는 잘 몰랐던 것일 뿐이다.
줄임말도 그렇다. 기성세대의 많은 사람이 젊은 세대의 줄임말에 대해 많은 반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줄임말이 그 자체로 문제인가? 자신이 못 알아듣는 말을 자기들끼리 하는 게 기분 나쁜 것인가?
줄임말은 아주 옛날부터 써왔다. 지자체, 건보료, 국감, 수능, 농협, 비대위, 문체부 등은 줄여 쓰는 게 괜찮고, 젊은 세대가 줄여 쓰는 말은 안 괜찮은 건가? 물론 위의 예시들과 신조어 줄임말 사이에는 보편성과 추측 가능성에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신조어들도 잠깐 사용되고 사라질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계속 사용해서 점점 더 보편성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언어 사용에도 유행이 있고, 원래 말은 그냥 재미로도 많이 한다. 어려운 한자어든 모르는 신조어나 줄임말이든,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말하고 쓰기를 바랄수는 없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사람마다 세대마다 다르다. 언어는 원래부터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변해가는 것인데, 위와 같은 논란에서 특정 세대의 문해력 부족을 꼬집고 비난하며 진짜 문제를 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디지털 콘텐츠의 강세로 점차 우리들의 문해력이 약해지는 현상도 중요한 시대적 문제이다. 그러나 ‘심심한 사과’ 논란에서 진짜 문제가 문해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위와 같은 예시와 논란들은 그저 자연스러운 세대차이거나 사람에 따른 차이인 경우도 많다. 심지어 같은 어휘도 사람마다 다른 뉘앙스로 사용하기도 한다. 소통을 위해 문해력이나 어휘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이해하려는 의지가 아닐까? 언어는 어쨌든 소통을 위한 것이다.
어떤 어휘의 뜻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거나 내가 모르는 말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태도, 내가 쓴 어휘를 누군가 모른다는 걸 알았을 때 소통을 위한 다른 말을 찾아보지 않고 곧바로 상대방의 문해력을 문제 삼는 태도가 우리의 소통을 막는다.
줄임말과 수많은 신조어는 과연 진짜 문제일까? 이런 말들에 좋은 점도 많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 다른 언어권에서도 줄임말은 활발하게 사용된다.
누군가 그러한 어휘를 이해하는 데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 요즘의 줄임말이나 신조어들이 언어를 파괴한다고 무작정 비난을 하기보다 새로운 말에 흥미를 느끼고 이해해보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우리 말과 글이 서로 더 잘 통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자연스럽게 사용했던 단어를 상대방이 모를 때 상대방이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하지 말고 통할 수 있는 말을 찾아보자. 그럴 땐 ‘심심한 사과’라고 하지 말고,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라고 해보자.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들을 때, 아무렇게나 추측해서 오해하고 비난하지 말고 무슨 뜻인지 찾아보거나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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